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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s://www.hani.co.kr/arti/opinion/column/1038394.html

 

[세상읽기] 한승훈ㅣ종교학자·원광대 동북아시아인문사회연구소

 

아마도 이것은 문재인 정부의 마지막 종교 관련 논란이 될 것이다. 청와대는 지난 6일 개방을 앞둔 북악산 남측면 둘레길을 대통령 부부가 직접 걸으며 안내하는 홍보 영상을 공개했다. 이 산행길에는 사찰 중창이 진행되다 1968년 김신조 사건으로 북악산 일대가 폐쇄되면서 중단된 법흥사 터(추정)가 있다. 불교 언론인 <법보신문>에서는 대통령이 문화재청장에게 이 절터의 내력에 대한 설명을 들으면서 연꽃 문양 주춧돌에 앉은 일에 대해 문제를 제기했다. 이 기사에는 불교계 인사들의 논평도 소개되었다. “참담했다”, “성보를 대하는 마음이 어떤지 이 사진이 보여주고 있는 것 같다”, “자신이 믿는 종교의 성물이라도 이렇게 대했을까”, “문화재청장이 그것을 보면서 가만히 있었다는 건 이해할 수 없는 행태다”.

 

정부의 대응은 빨랐지만 서툴렀다. 논란이 일어난 지 하루가 채 지나지 않아 문화재청에서는 기자들에게 해당 주춧돌은 “지정 또는 등록문화재가 아니며”, “사전에 보다 섬세하지 못했다는 지적에 대해서는 공감하며 앞으로는 더욱 유의하겠다”는 문자메시지를 보냈다. 앞의 말은 하지 않는 편이 좋았다. 물론 오래된 사찰의 남은 흔적이 아니라 새로운 건물을 짓기 위해 놓은 주춧돌이 종교적 사물인지, 나아가 함부로 다루어서는 안 되는 성스러운 대상, 불교 용어로 성보(聖寶)에 해당하는지는 논란의 여지가 있다. 그러나 문화재로 지정되지 않았으니 괜찮다고 말한다면 이야기가 달라진다. 행정적 관리를 위한 문화재 분류 체계와 성스러운 대상을 인식하는 종교적 체계는 완전히 별개이기 때문이다.

 

연꽃 문양 주춧돌이 ‘성보’라고 주장하는 쪽의 근거는 크게 두가지다. 하나는 그것이 오래된 절터에 놓여 있다는 ‘장소성’이고, 다른 하나는 불교 전통의 맥락에서 연꽃이 가지는 ‘상징성’이다. 분명 이 두가지 요소는 환유적·은유적 의미 작용을 통해서 대상을 성스럽게 인식할 수 있는 조건들이다. 그러나 이런 조건에 해당하는 모든 물체가 의례나 금기의 대상이 되는 것은 아니다. 여기에는 종교학자 조너선 스미스가 <종교 상상하기>에서 제시한 “의미부여의 효율성” 문제가 관련되어 있다. 국가가 모든 오래된 물건이나 장소를 문화재로 지정하면 비용과 비효율이 커진다. 마찬가지로 종교와 관련된 사물들 가운데 무엇을 더 조심스럽게 대해야 할 신성한 대상으로 여길지에 대해서 각 종교 전통은 일종의 전략적인 선택을 한다. 만약 우리가 모든 불교적인 물건을 ‘성보’라 부른다면 불자들의 신행 대상이 되거나, 사찰의 성보박물관에서 소중하게 보관되고 있는 유물들의 의미는 상대적으로 격하되고 말 것이다.

 

파장이 커지자 문 대통령은 “천주교인이지만 천주교 교리와 불교의 진리는 결국 하나로 만난다는 생각을 늘 갖고 있다”며 불교에 대한 존중 입장을 재확인했다. 이번 사건에는 한가지 숨은 맥락이 있다. 불교계 일각에서는 독실한 천주교 신자인 대통령이 불교를 홀대, 차별, 심지어 박해하고 있다는 인식을 가지고 있다. 취임 직후 청와대 관저에서 가톨릭 사제의 집례로 연 축복식, 역대 정부 최초의 교황청 특사 파견, 재임 기간 두차례의 교황청 방문, 국외 순방 중 잦은 성당 방문, 정상회담 과정에서 이루어진 남북 가톨릭 대표의 회담 등이 대통령과 정부의 ‘천주교 편향’ 사례로 거론된다. 정부기관과 여당 국회의원의 잇단 ‘불교 비하’ 논란들이 이런 불만에 불을 지폈다. 대통령보다도 문화재청장에게 비난이 집중되는 점 또한 2019년의 문화재위원 위촉 과정에서 승려 비중을 축소한 일의 앙금이 일정한 영향을 미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반복되는 불교발 종교차별 논란이 임기가 얼마 남지 않은 정부와의 대립을 통해 불교계 안팎에서 영향력을 확대하려는 세력에 의해 주도되고 있다는 비판도 있다. 개연성이 있는 이야기지만 그렇다고 해도 대응은 능숙해야 한다. 일부 교계 지도자들을 자극하지 않으려는 소극적인 해명보다는 진정성 있는 접근을 통해 광범위한 불자들의 이해와 공감을 얻을 필요가 있다. 불자들에게는 그런 정치적 사정 따위보다 훨씬 중요한 고민거리가 생겼다. 대체 무엇까지가 성보인가? 마음 밖에서 성스러운 것을 찾는 것 자체를 거부한 단하(丹霞)라면 그런 물음은 덧없다고 할지도 모르겠으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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